14/01/2024
돈수스님의《차의 맛은 텅빈 골짜기처럼 고요하다》50.
● 방하착(放下着)
하루의 마지막 시간 흐르는 개울물 소리마저 어둠속에 묻혀버린 깊은 밤이다. 책상 위에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차를 연이어 마시면서 간혹 대바람 소리만 머물고 있는 적정처(寂靜處)를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십여 년 전 지리산 어느 스님 암자 입구 바위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글을 수문장처럼 페인트로 써 놓은 것을 보고 나는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바라본 기억이 있다.
방하착(放下着)이라고 써 놓은 뜻은 아마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보고 듣고 배운 모든 지적 경험과 죽음까지도 던져 버리고 암자에 들어오라는 뜻일 게다.
육조 혜능스님께서는 항시 도 배우는 사람들에게 선(善)도
방하착(放下着, 놓아 버려라) 악(惡)도 방하착(放下着, 놓아 버려라). 그리고 너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 생명의 참다운 실체를 보라 하셨다.
선문(禪門)에서는 놓아 버리면(放下着) 편안하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우리 모두의 본질은 원만하기가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남음도 없다. 사랑과 미움, 취합과 버림 때문에 삶의 진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라고 옛 분들은 말씀하고 있다.
우리들의 삶은 많은 지적 경험을 통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사랑과 미움, 크다 작다, 있다 없다, 밝음과 어두움, 아름다움과 추함, 부와 빈, 성인과 범부, 창조주와 피조물......
이 모든 것들을 일시에 놓아 버린다면(放下着) 아마 이 세상을 편견없이 정직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정직함은 자신과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진정한 신뢰심일 것이다. 그 신뢰심은 곧 믿음이며 그 믿음은 분명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고 신선하게 해 줄 것이다.
당시대의 위산스님께서 향엄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태어나서 보고 듣고 배운 것 말고 한마디 해 보라." 했다. 총명하기로 유명했던 향엄스님은 한마디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스님은 "지금까지 지고 다녔던 모든 책들을 불태우면서 이것으로선 생사를 대적할 수 있는 대책이 되지 못하며,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없다." 하시며 일체를 방하착(放下着) 했으며 열심히 수행하여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비유경에는 원숭이를 예를 들어 방하착을 재미있게 설명해 놓았다. 이 세상에 탐욕심이 가장 많은 동물이 원숭이다. 남방에서는 원숭이의 탐욕심을 이용하여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 있다. 상자에 큰 과일을 몇 개 넣어 놓고 원숭이 손만 겨우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뚫어 원숭이가 잘 다니는 길목에 매달아 둔다. 그러면 지나다니던 원숭이들이 과일을 발견한 후 손을 상자에 넣어 과일을 움켜쥐었지만 과일을 한 웅큼 쥔 손은 상자에서 빠지지 않는다.
원숭이는 움켜쥐었던 과일을 놓아 버리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과일을 한번 움켜진 손은 사냥꾼이 원숭이를 덮칠 때까지 결코 놓지 못한다. 원숭이는 탐욕심을 방하착(放下着)하지 못해 자유를 잃어버리는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원숭이처럼 돈이든 권력이든 한번 움켜쥐면 놓을 줄 모른다. 항차 죽음마저도 놓아 버리지(放下着) 못해 우리 모두는 고통을 당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본질에 대한 인식과 사유가 부족한데서 만들어진 모습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일체를 놓아 버리고(放下着) 본심(本心)을 통달한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의 삶의 축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대자유에 두어야 한다. 자유의 실현은 자아탐구와 자기실존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우리 모두는 자아 실존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선문(禪門)에서 유독 깨달음의 실현을 강조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이 깨달음의 논리를 통해서 삶의 주체로서의 자율적 의미를 명쾌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달음을 통한 자기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은 세상의 모든 존재와 진실한 만남으로 이어진다.
길 섶의 보잘 것 없는 잡초의 꽃일지라도, 이 세계의 모든 아름다움을 우리는 그곳에서 누릴 수 있으며,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행복의 조건들이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에 충만되어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피안은 성인과 범부, 창조주와 피조물, 생과 사, 선과 악, 주관과 객관, 사랑과 미움...... 일체가 무너져 그 어디에도 걸림없는 때묻지 않는 순수한 청정심이다.
신앙의 순수성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신의 믿음을 근본으로하는 신앙은 더 이상 순수의 의미가 아니다. 깨달음을 통한 모든 존재를 편견없이 정직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만이 진정 순수의 의미일 것이다. 이 정직함은 우리 인류가 삶의 긴 역사 속에 창조한 그 어떤 신보다 비견할 수 없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세상 누구든 청정한 삶의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삶의 신선함으로 충만되어 있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방하착(放下着)
《차의 맛은 텅빈 골짜기처럼 고요하다》
50. 방하착(放下着), 돈수스님, 남탑산방
2.3쇄본의 169쪽, 초판본 163쪽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붙여진 삽화는 초판본과 2.3쇄본의 것이 같다. 글 첫머리 내용에 나오는 울창한 대나무 숲 대 바람 소리만 머물고 있는 적정처(寂靜處)인 토굴에서 차를 다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 주인공은 돈수스님 자신이다.
이 글은 선문(禪門)에서 중요한 화두로 다루는 내려놓음(放下着)에 대하여 자세하고 다방면의 예화와 설명을 통해 깨달음의 원리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아울러 신앙과 믿음에 대한 견해도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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