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2/2025
그날의 물길은 단순한 유적 답사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성 아래를 가로지르는 히스기야 터널을 따라 걸을 때, 발목을 적시는 차가운 물은 2,700년의 시간을 품고 있었습니다. 왕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수로는 사실 생존의 통로였습니다. 포위된 성 안에서 물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선택, 땅속 암반을 두드리며 서로를 향해 다가가던 두 방향의 곡괭이 소리. 인간의 기술이 아니라, 살아남고자 하는 공동체의 의지가 만든 통로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발 한 발 내딛다 실로암 못에 도착했을 때, 저는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씻었습니다. 씻긴 것은 먼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경쟁과 성과, 설명해야 할 말들, 증명해야 할 자아가 잠시 가라앉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래된문장곁에』를 펼쳤습니다. 오래된 문장은 늘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어디서 물을 길어 올리는가.”
히스기야의 수로는 위대한 왕의 업적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진 노동과 협력의 흔적입니다. 민화로 그 장면을 다시 그려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원근을 지우고, 선을 단순화하고, 상징을 앞세운 민화처럼 신앙도 그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깊이를 과시하지 않고, 높이를 다투지 않으며, 공동의 생명을 향해 흐르는 물처럼.
실로암에서의 묵상은 제게 다시 묻습니다. 교회는 어떤 물길을 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발을 씻기고 있는가. 오래된 수로 위에서, 오래된 문장 곁에서, 오늘의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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